사람들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때는 운이 나빴어.”
“상황이 안 좋았지.”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이상하다. 다시 했는데, 또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사람은 분명 실패를 겪었는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같은 선택을 한다. 이 현상은 의지나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은 실패를 숨기고 기록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지 구조의 문제를 알아 보고자 한다.

실패를 기록하지 않으면 뇌는 실패를 ‘사건’이 아니라 ‘예외’로 처리한다
실패를 겪었을 때, 사람의 뇌는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한다. 실패를 분석 가능한 정보로 저장하거나 실패를 감정적으로 불편한 기억으로 분류해 최소화한다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 대부분의 경우, 뇌는 두 번째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실패는 자존감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뇌가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 기제가 있다. 바로 예외 처리다.
“이번엔 특이한 상황이었어.”
“평소엔 이런 일이 없어.”
“운이 정말 안 좋았지.”
이렇게 실패를 예외로 분류하면 실패는 분석할 필요가 없는 사건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외로 처리된 실패는 패턴 인식에서 제외된다. 즉, 뇌는 이 실패를 “다음 선택에 반영해야 할 정보”로 저장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같은 조건, 비슷한 상황에서 이전과 거의 동일한 판단을 다시 내리게 된다.
“그때 운이 나빴다”는 말이 만들어내는 인지적 왜곡
“운이 나빴다”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매우 강력한 인지 왜곡 장치다.
이 말이 등장하는 순간, 실패의 원인은 이렇게 정리된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 다시 고려할 필요 없는 변수, 개인의 판단과 무관한 사건, 이 과정에서 세 가지 왜곡이 동시에 발생한다. 첫 번째는 통제 환상이다. 사람은 스스로 이렇게 믿게 된다.
“다음에는 같은 선택을 해도 괜찮다.”
“운만 다르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정보, 같은 판단 구조, 같은 기준을 사용한다.
두 번째는 기억 단순화다. 실패의 복잡한 맥락이 사라지고 “운이 나빴다”는 한 문장만 남는다. 이 상태에서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떠올릴 수 없다. 왜냐하면 뇌에 남아 있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자기보호 편향이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분리함으로써 자존감은 지키지만, 학습 가능성도 함께 제거된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되면 실패는 다시 선택을 바꾸게 만드는 신호가 아니라 그저 지나간 불운이 된다.
실패를 숨길수록 실수는 ‘반복 구조’로 굳어진다.
실패를 숨긴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패를 숨기는 사람의 내면 독백은 대체로 이렇다.
“굳이 다시 떠올릴 필요 없어.”
“생각해 봤자 기분만 나빠져.”
“이미 지나간 일이야.”
이 선택이 반복되면 실패는 분석되지 않고, 분석되지 않은 실패는 패턴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상태에 놓인다. 왜 실패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 모르며 다시 비슷한 선택을 한다 이때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상하게 항상 비슷한 데서 막힌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결과가 늘 비슷하다.”
이것이 바로 실패를 숨길수록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다. 실패는 잊혀졌지만, 실패를 만든 판단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가, 같은 실패를 겪고도 다른 결과를 만드는 사람들은 실패를 이렇게 다룬다.
실패를 감정에서 분리하고 판단과 조건 중심으로 정리하며 다시 선택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한다 이들은 실패를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운이 나빴다”가 아니라 “그때 나는 이 변수를 과소평가했다.”
“이 가정이 틀렸다.”
“이 기준은 다시 설정해야 한다.”
이 순간 실패는 부끄러운 기억이 아니라 의사결정 데이터가 된다.
실패를 숨기는 순간, 학습은 멈춘다 실패를 숨기는 것은 당장은 편하다. 자존감도 지킬 수 있고, 불편한 감정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분명하다. 같은 판단을 반복하게 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며 시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는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가 적은 사람이 아니다. 실패를 남기는 사람이다. 기록된 실패만이 다음 선택을 바꾼다.
다음에 실패를 떠올리게 된다면 이 질문부터 해보자.
“이 실패를 운으로 덮어버리면,
나는 다음에 무엇을 또 반복하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실패는 비로소 같은 실수를 막아주는 경험이 된다.